김기협 식 ‘낭만적 종북주의’가 구당권파의 토양이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2-05-23일자 기사 ‘김기협 식 ‘낭만적 종북주의’가 구당권파의 토양이다‘를 퍼왔습니다.

낭만적인, 너무도 낭만적인 ‘그 종북주의’ 비판

 

어제 저녁부터 오늘 오전까지 프레시안의 탑에는 을 저술한 역사학자 김기협의 라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부제는 “가짜 ‘종북주의자’는 가라!”다. 요즘 맥락에 대입해 본다면 경기동부연합의 ‘가짜 종북’을 규탄하고 우리가 긍정해야 할 ‘진짜 종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겠다는 것이 글의 의도라 여겨진다. (링크)

 

▲ 김기협의 해당 칼럼은 프레시안 TOP에 만 하루 동안이나 올라가 있었다.

 

처음에 기자는 이 글의 제목만 보고 순간적으로 ‘진성 주체사상파’의 커밍아웃인 줄 알았다. 기자가 아는 선배 운동권들의 전승에 의하면, ‘진성 주체사상파’들은 오직 북한에 있는 조선노동당만을 섬길 뿐 그 중간에 다른 당이 개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강철서신’의 김영환도 민혁당을 못 마땅해하는 ‘꼴주사’들에게 시달렸고, 김일성이 친히 그 뒷방 늙은이들을 정리해 주기를 바랐건만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걸 보고 ‘삐져서’ 변절했다고들 한다. 민혁당을 재건한 하영옥과 이석기 역시 ‘꼴주사’들의 비난을 받은 건 마찬가지였다 한다.

훗날 소련이 붕괴한 후 몇 년을 우왕좌왕하며 정신을 못 차리던 PD들이 혁명노선을 포기한 합법적 대중정당을 기획하고 ‘저 사람 좋고 활동성 좋은 NL 친구들’도 ‘대중운동을 하면 달라질 것’이라 믿고 합류를 권유했을 때, NL들은 국민승리21이나 민주노동당을 ‘합법적 대중정당’이 아니라 민혁당 대하듯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꼴주사’들의 시선에서라면 중간에 민주노동당이든 통합진보당이든 다른 매개를 도입하는 것이 ‘타락’의 증표일 수 있다. ‘타락한 주체사상파’들이 모여 민주노동당의 역사를 그들의 것으로 고쳐쓰고 그들의 오랜 숙원인 연립정부 건설을 위해 여러 세력을 그러모아 판돈을 키운 것이 오늘날의 통합진보당이다. 통합진보당에 속한 다른 정파들은 기분이 나쁘겠지만, 적어도 ‘진성 주체사상파’들의 시선에서는 그렇다.     물론 기자는 전승에 나오는 ‘진성 주체사상파’들이 아직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지 여부를 모르고, 있다 해도 그 ‘사상’을 이유로 감옥에 가야 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리고 이석기 등이 과거 민혁당 활동을 했다 하여 오늘날에도 그들이 ‘혁신 주체사상파’라고 단언할 생각도 없다. 그 과거를 근거로 그들이 대한민국을 북한에 팔아넘길 거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보수언론들의 주장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민혁당 활동에 대해 이미 처벌받았으며, 그래서 대한민국 법으로도 그 건에 대해 다시 처벌받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이석기가 사퇴를 거부하는 이유로 ‘30년 진보운동’을 운운할 때, 그가 말하는 운동의 역사가 민주노동당이나 그 전신인 국민승리21의 역사가 아니라 다른 어떤 연속된 운동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할 따름이다.

‘낭만적 종북주의’가 어떻게 이석기를 숨기는가

여기서 기자가 김기협의 칼럼 논지와 ‘무관한’ 주체사상파들의 이야기를 한 이유가 드러난다. 그들의 과거 행적으로, 그들 조직의 목표를 추정하여 비판하는 것이 보수언론의 방식이다. 이런 비판에 영향 받을 이들도 한국 사회에 꽤 있겠으나 기자는 물론 통합진보당 지지층의 상당수는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19대 총선에서 10.3%, 220만표의 지지를 획득했던 통합진보당이 최근 여론조사에서 3%대까지 추락한 모습을 보인 것은 조중동의 보도 탓이 아니다.

아마도 김기협은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통합진보당이 지지층의 신뢰를 잃어버린 원인은 구당권파의 권력을 내려놓지 못하는 태도, 폭력으로 절차를 회피하려는 기동, 국민의 명령에 승복하지 못하는 자세에 있지 ‘종북주의’에 있지는 않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설령 사람들이 그 ‘종북주의’에 비판적일지라도, ‘진보진영’은 그 ‘상식적인 인식’을 넘어서야 한다고 볼 것이다. 그가 북한 핵개발과 3대세습 비판을 ‘상식적인 견해’로 바라보는 진중권의 인식의 한계(?)를 비판할 때 의도하는 바가 그것이다.

그러나 김기협의 견해는 구당권파가 대중의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중은 조중동의 주장에 반신반의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는 건너뛰고 현재에 관해 질문을 한다. “북한 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북한의 3대세습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북한 인권 문제가 있다고 보십니까, 없다고 보십니까?” 이에 대해 백분토론에 나온 이상규 당선자는 “질문이 잘못 되었다”고 말한다. 통합진보당 소속 정치인들의 상당수가 이런 식일 것이다. 그리고 김기협은 이것들을 ‘말도 안 되는 짓’으로 여기는 ‘진중권의 관점’에 “이 사회에서 스스로 깨어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도 많이 동조하기 때문에 걱정스”럽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자는 일반적인 대중은 물론 통합진보당의 지지층도 이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사태가 어떤 식으로든 수습된다 하더라도 통합진보당은 올해 대선 정국 내내 보수언론의 꽃놀이패, 야권연대의 ‘약한 고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기자의 예측이다.

통합진보당 구당권파는 이런 문제에 대해 “질문에 답변할 수 없으며, 그런 질문 자체가 냉전적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것이다”라고만 얘기해도 진보진영 내에 지지해줄 사람들이 제법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안다. 그래서 대중 앞에서 여전히 그런 태도를 견지할 수 있고, 그 결과  통합진보당은 물론 진보세력 전체를 고립시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보수언론이 연일 때려대는 이석기의 민혁당 경력과 김재연의 시댁의 부유함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건 그들이 가진 현재의 정치적 견해를 비호하는, 김기협이 ‘커밍아웃’과 궐기를 촉구하는 ‘그 종북주의’, ‘낭만적 종북주의’다. 진보진영이 이 견해가 ‘상식 이하’의 것이 아니라 ‘상식 이상’의 것이라 믿는 한, 진보언론의 NL 비판에도 한계가 있고 진보지식인들 역시 언제든지 ‘통일운동의 동지’들을 품으라고 진보진영과 시민사회 세력에게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한국의 진보진영은 흡사 서민에게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노력)과 함께 친북(적 태도)을 함께 받든지, 아니면 북한 욕하며 비참하게 살든지”란 식의 ‘베팅’을 거는 ‘타짜질’을 하는 상황을 넘어설 수 없다. 

 

▲ 22일자 <100분 토론>에서 한 시민 논객은 이상규 당선인을 향해 ‘북한 3대 세습, 북한 핵개발 그리고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대답’을 요구했다. 이에 이 당선인은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대답을 유예했다. 진보진영은 언제까지 이런 문제에 대한 대답회피를 옹호할 것인가.

 

김기협이 ‘상식’을 회피하는 몇 가지 논거에 대한 답변

김기협은 칼럼에서 “핵 개발이나 3대 세습을 ‘말도 안 되는 짓’으로 여기는 진중권의 관점”을 비판하기 위해 다양한 논거를 두서없이 늘어놓는데, 이를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람 행동은 형편에 따라가는 면이 있다. 형편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발생하는데, 그럼에도 어느 범위의 나쁜 짓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 가령 연평도 포격 같은 문제가 그렇다. 그러나 핵개발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함의가 있고, 국가 권력 세습은 그보다도 더 의미가 복잡하다.

둘째, 형편이 어려워서 어떤 일을 할 때엔 그 행위를 금지하는 외과적 방법과 형편을 낫게 해주는 내과적 방법이 있다. 이중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내과적 방법이다.

셋째, 개인의 파편화를 더욱 심화하는 경제적 세계화가 인류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족적 정체성이 중요하다. 민족적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정치적 세계화, 세계정부의 기반도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족 문제 해결은 경제성장이나 민주주의 발전보다 더 중요하고, 분단문제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넷째, 우리는 북한의 사정을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다.

다섯째, 남한 역시 불과 30여년 전에 핵 개발과 1인 종신 독재를 시도했다(박정희). 지금 북한 형편이 그때 남한이랑 비슷한데, 잘 되도록 도와줘야지 손가락질 하는 것은 오만이다.

첫째 논거를 들으면 우리는 김기협이 북한 핵개발과 국가권력 세습에 관한 그 복잡한 함의에 대해 대략적으라도 설명해줄 것으로, 그리하여 북한 체제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것으로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글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런 설명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왜 이 두 사안이 연평도 포격과 구별되어야 하는지를 이 글만 보면 납득할 수 없다.

둘째 논거와 다섯째 논거는 겹친다. 그런데 박정희 시대에는 껍질이라도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있어서 민주화 운동도 가능했고 김영삼과 김대중 같은 정치인의 활동도 가능했다. 그리고 그 당시 국제사회에서 모든 ‘외과적 방법’을 포기했다면, 김대중의 생존도 보장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기협의 구별이 두 사안에 대한 비판을 부적절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 효력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남한의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이 핵개발이나 3대세습에 의견을 표시하는 것이 북한에 무슨 큰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보기 어렵기에 그게 과연 ‘외과적 방법’을 추구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지금 유권자들이 진보정치에 요구하는 것은 북한에 침투해서 체제를 무너뜨리거나 바꾸어내라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는 남한 사회를 북한 사회처럼 만들려고 한다”는 보수세력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점도 확인을 못 해주겠다고 버티는 이들을 보고, 보수세력의 주장이 사실이라 믿게 되거나 기왕에 바쳤던 ‘지지’까지 철회하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로 드러난 통합진보당의 지지율 하락추이. 최근 어떤 조사에서는 3%대까지 하락했다고 알려졌다.

 

민족 문제에 대한 극단적인 집착이 문제다 

네 번째 논거는 자승자박이다. 김기협은 적어도 북한의 형편이 매우 어렵다는 것과 북한 핵개발과 3대세습에 모종의 사정이 얽혀 있다는 것을 전제로 글을 쓰고 있다. 북한에 대해 얘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자신이 전지전능하다고 주장하는 법이 없고, 우리에게 드러난 것들을 보고 얘기한다. 다만 NL 계열 대학생들과 토론을 하다 보면 UN이나 시민사회단체 쪽에서 나온 정보들까지 ‘미국’에서 나온 것이라 믿을 수 없다고 반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는 만큼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사실을 없다고 우기거나 함의를 왜곡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다. 가령 탈북자 얘기를 하는데 그들이 북한 내 사회부적응자에 불과하다든지 남한의 이민이 훨씬 더 많다든지 하는 식으로 반응을 하면 토론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김기협은 그런 이들이라도 우리 사회에 늘어나는 게 더 좋다고 믿는 듯한데, 그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 세 번째 논거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민족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통일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 통일은 평화통일이어야 하기에 북한에 거스르지 않는 말을 하는 관용적인 사람이 훨씬 더 늘어나야 한다는 견해다. 그리고 그 ‘관용’이 어느 정도 관용이냐 하면, 핵개발이나 3대세습에 대한 입장표명도 금지하는 수준의 관용(!)이다.

이런 주장은 민족 문제가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그 이전에 김기협이 내세운 ‘민족 문제가 중요한 이유’라는게 망상적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개인의 파편화’ 문제와 ‘민족적 정체성’ 문제는 큰 관련이 없다. 따라서 개인의 파편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일을 해야 한다는 얘기도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4대강을 파야 한다는 얘기만큼이나 뜬금없이 ‘안드로메다로 가는’ 소리일 뿐이다.

집단주의와 민족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 오히려 소규모 지역공동체가 모조리 파괴되다 시피하여 개인이 파편화된 상태로 남아 있으며,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민족주의를 극우 이념으로 취급하는 유럽 사회가 이 점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훨씬 양호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임대주택이 적고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하여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사를 가야 하는 사회현실을 놓아두고, 남북교류가 늘어나고 통일이 일어나면 개인이 사회적인 연대의식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할 셈인가. 결국 개인의 파편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종류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지방권력을 창출하는데 시민들 스스로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민주주의의 진전이 필요하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민족문제가 경제문제나 민주주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기는커녕, 그 반대인 셈이다.

또 설령 정치적 세계화의 시대에 코스모폴리탄으로 부유하지 않고 ‘정체성’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일말의 일리가 있다 하더라도, 그 ‘정체성’이 왜 남북한을 포괄해야 하는지에 대해 김기협은 어떠한 설명도 할 수 없다. ‘민족적 정체성’은 인종적·문화적·언어적 유사성에서 자동적·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김기협의 주장대로라면 북한 당국은 이미 정치적 세계화에 대한 모든 대비를 마쳤다. 그들은 자신들을 ‘김일성 민족’이라 칭하고 있고 그것이야말로 3대세습의 중요한 근거다.

물론 이 정체성은 ‘단군 조선 이래 삼천리 강산을 포괄하는 4천년 단일민족’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겠다. 하지만 3대세습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이들이 ‘김일성 민족’과 ‘대한국민’을 한데 그러모으면 자동적으로 ‘단군 조선 이래 삼천리 강산을 포괄하는 4천년 단일민족’이란 정체성이 회복될 거라 믿는 것은 매우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박정희나 박종흥이 믿었던 것처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난 건 아니기 때문에, 무작정 그러모아도 그런 정체성은 “안 생겨요”라고 답변드릴 수밖에 없다.  

가져다붙이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NL의 주장을 지지·옹호하는 이들은 민족 문제를 극단적으로 중시하며 심지어 사회 문제의 최종 심급에 놓는다. 2007년 당시 민주노동당의 다수파가 된 NL진영에서 ‘코리아 연방공화국’을 ‘국가비전’으로 내세우려 시도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금은 투병 중인 경기동부연합의 실세 중의 실세이며 그 당시 대선 정책개발단장이었던 이용대의 말을 들어보자.

코리아 연방은 단순히 통일정책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말고는 그 어느 당도 낼 수 없고 동의할 수 없는 민주노동당만의 국가대안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면 나라가 바뀐다! 대한민국 시대가 끝나고 ‘코리아 연방’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 비정규직, 한미FTA로 민중의 생존이 벼랑에서 고통받는 나라가 아니라 민중이 잘사는 나라, 일자리 걱정 없는 나라, 서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 나라가 코리아 연방이다. 

그러나 가령 비정규직 문제 같은 것들엔 별도의 대처가 필요하지 통일을 통해 해소될 수 없다. 남한의 사회경제 구조를 그대로 둔 채 통일을 한다면 통일한국 내에서 북한 인민들의 미래엔 경제적으로는 예비된 비정규직, 문화적으로는 차별받는 2등국민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오히려 보수주의자들이라면 “그러한 위치라도 ‘왕조국가 김씨 조선’의 신민보다는 낫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진보주의자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통일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망상은 이렇게 극과 극의 지점에서 통한다.

 

▲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15번 황선 후보의 리플렛의 정책부분. 남북 교류가 사회경제적 문제의 최종적 해법으로 제시되어 있고 복지예산 역시 이를 통해 충당한다고 되어 있다. 이 777 공약은 2007년 대선 이명박 대통령의 747 공약을 뛰어넘는 ‘패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사회문제에 대한 이런 방식의 접근은 ‘NL출신’들의 ‘속내’를 보여준다는 시선이 많다.

 

북한 핵문제에 대한 다른 시선

마지막으로 김기협이 언급을 회피한 북한 핵문제와 3대세습 문제에 대한 맥락과 함의를 한 번 더 짚어보자. 김기협의 말처럼 “핵 개발은 평화를 위협하는 짓이고 3대 세습은 민주주의 원리에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짓으로 보”일 뿐, 함의를 따져보면 달리 볼 소지가 있는지를 간략히 살펴보자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북한 핵문제는 남한 사람보다는 일본이나 미국 사람에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북한 핵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체제의 안정을 보장받기 위해 ‘인질’의 숫자를 늘리려고 한다는 것인데, 남한 사람은 북핵이나 미사일이 등장하기도 전에 이미 ‘인질’로 붙들려 있는 상태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런 이유로 북한 핵문제가 우리에게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납득이나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말하려면 한반도에 전쟁이 날 경우 우리는 어차피 패배하고 죽게 될 테니 세상이 방사능에 물들건 말건 내 알 바 아니라는 허무주의적 관점과, ‘이왕 나도 인질인 거 남들도 다 인질이었으면 좋겠다’는 비윤리적 태도를 가져야 하겠지만 말이다. 개인사의 세계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다 걱정스럽게 그가 ‘스톡홀름 콤플렉스’에 빠져 있다고 진단할 것이다. 

북한 정권은 일단 북한 사람을 인질로 잡고 있고, 한반도의 전쟁 발발 가능성을 통해 사실상 남한 사람도 인질로 잡고 있다. 그리고 이 인질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체제 안정에 기여한다 생각한다.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은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굳이 종북주의자들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남한 사람들 역시 적어도 직관적으로는 이해하는 영역이다. 보수 언론의 보도의 문제는 또 다르지만, 사실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할 때 공포를 느끼는 것은 대체로 일본 사람이지 한국 사람은 아니다. ‘진정한 종북주의자’라면 미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유일한 해방구인 북한이 곧 핵개발을 완수하여 미제의 항복선언을 받아들이는 날이 올 거라고 믿을 것이다. 남한의 희생 따위는 그 대의를 위한 투쟁에서 파생되는 곁가지로 취급될 것이다. 그러나 ‘온정적인 종북주의자’는 그런 망상적 태도는 버리는 대신 가난한 북한이 같은 핵시설을 미국에 세 번씩 팔아먹는 행위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를 김기협은 ‘형편이 어려워서 하는 일’이라 요약하고 북한 형편이 어려운 데엔 남한 책임도 있다고 말한다. 그가 연평도 포격과 북한 핵개발을 구별하는 것을 개인사 버전으로 바꾸어 보자면, 형편이 어려워도 강도질을 하면 안 되지만, 인신매매나 유괴를 하는 건 이해할 만하다고 말하는 수준이다. 실제로 때리거나 죽이기 전에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오빠 믿지? 오빠가 지금 네 목에 칼을 대고 있는 건 너를 헤치기 위함이 아니고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저 미제 아저씨에게 삥을 뜯어 ‘우리 민족끼리’라는 외딴 섬에 가서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거 알고 있지?”

믿는 건 좋지만 남들에게 강요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3대세습과 북한 인권문제를 바라보는 보수와 진보

 

▲ 김정은은 ‘김일성 민족’을 통치하기 위해 할아버지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방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연합뉴스

 

김기협이 말한 대로 3대세습 문제는 핵문제보다도 더 복잡하다. 사실 주변국들도 내심 3대세습이 성공하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현재 북한의 실정에서 그 외의 대안을 생각하기 힘들고, 3대세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북한이 일종의 권력투쟁 상황에 들어가 예측할 수 없는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동안 북한 정권은 제 나라의 체제를 태양신의 자손이 통치하는 신성왕국처럼 만들어 왔다. 오히려 위기를 관리해야 하는 보수진영의 입장에서 3대세습과 인권문제가 꺼내기 부담스러운 주제가 될 수도 있다.

김기협은 “국가 권력의 혈연 세습은 인류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었다. 민주공화제가 군주제를 널리 대치한 것은 20세기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민주 정치다운 민주 정치가 작동하고 있는 곳은 지금도 많지 않다”라고 설명한다. 역사학자의 이러한 관점, 존중할 수 있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자나 역사학자들이 이러한 이유로 이재용의 삼성 승계를 정당화할 때 우리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한 번 떠올려보자. 아마 “누가 세습 자체를 금지시키자 그랬나. 제 아들에게 물려주려면 세금이나 다 내라 그래라. 그걸 피하니 문제지” 정도가 적절한 대응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서도 우리가 할 말은 “누가 아니라 했나? 인민이나 굶기지 말라고 그래라. 그리고 저걸 보고 사회주의 체제라 믿는 잡것들도 정신 좀 챙기고” 정도가 될 것이다.

남한 사회에서 오히려 보수세력들이 ‘보수적으로’ 위기를 관리하려고 하기 보다 현존하는 북한 정권을 부정하고 무너뜨려야 한다는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진보세력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보수세력은 진보세력이 북한 사회를 이상향 내지 사회변혁의 지향으로 여긴다는 ‘혐의’를 가지고 있다. 3대세습이나 인권문제에 대해 말해보라는 것은 그 ‘혐의’를 시민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정치기동이다. 이에 대해 진보세력은 수세적인 대응을 해왔다. 가령 탈북자 문제에 있어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처럼 문제를 시끄럽게 만들면 오히려 탈북자들의 목숨을 담보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3대세습에 대해 정치세력이 견해를 표명하는 것이 누구를 죽이는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답변을 회피한다.

그리고 구당권파는 이러한 질문이 ‘양심의 자유’의 침해이기 때문에 잘못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답변을 회피하면서 충분히 ‘양심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진중권이 지적했듯 유권자가 정치인에게 정치적 견해를 물어보는 것은 그들의 권리에 해당한다. 물론 ‘침묵’ 역시 이에 대한 답변일 수 있지만, 그렇다면 유권자가 그 침묵을 근거로 지지를 철회하는 것 역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김기협이 북한 사회를 이해해 보려 하듯 남한 사회를 살펴본다면, 평범한 시민들이 진보진영의 다른 문제제기엔 공감하더라도 북한 문제에 대한 부족한 태도 때문에 그들을 비토하는 상황은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낭만적 종북주의’가 애써 회피하려고 하는 부분은 그 지점이다. 그리고 지금껏 ‘낭만적 종북주의’가 진보 담론 내에서 주류 담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지분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최근 백일 하에 들어난 구당권파의 패권주의적 태도가 온정주의와 편의주의 속에 지금까지 묵인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장담컨대 김기협이 천명한 ‘진짜 종북주의’. ‘그 낭만적 종북주의’야말로 경기동부연합이 진보정당 운동을 농단할 수 있게 한 비옥한 토양이다.

그러나 상황은 변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진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런 것은 ‘진보’가 아니라 말하기 시작했다. 애정이 적은 이들은 비웃으며, 관심이 더 많은 이들은 분노하며 그리 말한다. 그런데도 진보언론과 지식인들이 구당권파의 권력욕에 돌을 던지면서 이 문제를 비켜간다면, 이번 대선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간 역사 속에서 어떻게든 영향력을 확장해 온 진보담론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한윤형 기자  |  ahriman@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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