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정규직노조 간부의 통렬한 반성문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3-29일자 기사 ‘현대차 정규직노조 간부의 통렬한 반성문‘을 퍼왔습니다.

 

힘든일 떠넘기기…노동자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

 

불법파견 인정과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최병승·천의봉씨 등 울산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2명이 철탑에 오른 지 28일로 163일째를 맞았다. 쌍용자동차 노조의 한상균 전 지부장과 복기성 수석부지회장의 고공농성은 129일째다. 현대차는 대법원과 중앙노동위원회의 잇단 불법파견 판정도 인정하지 않은 채 사내하청 노동자를 신규채용하겠다는 기존 태도를 버리지 않고 있다. 쌍용차 문제에 대한 국정조사를 벌이겠다고 공언한 정치권은 대선 뒤 눈과 귀를 닫아버렸다. 이런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정규직 노조도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에 최고 산업재해율을 기록하는 한국에서는 오로지 노동을 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출범 10년째를 맞은 날, 현대차 울산공장 정규직 노동자가 회사의 전면적 태도 변화와 정규직 노조의 각성을 촉구하는 글을 보내왔다.

 

최병승·천의봉씨 등 울산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2명이 철탑에 오른 지 28일로 163일째를 맞았다. 김태형 기자

 

 

이러다간 현대자동차 망합니다.

 

2003년 현대자동차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2004년 노동부가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한 지 10년이 흘렀습니다. 대법원에서 현대차 정규직이라고 판결받은 최병승 조합원과 지회 천의봉 사무장이 현대차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철탑에 올라가 농성을 시작한 지도 160일이 지나고, 곧 반년이 되어 갑니다. 정몽구 회장에게 인간성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다면 더 이상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세계최장 작업시간에 찌든 ‘노동귀족’ 

절반의 임금으로 힘든일 떠넘기니 

정의는 사라지고 의식은 썩어가고… 

정규직 노조 ‘비난과 고립’ 벼랑에

 

대법원도 중노위도 불법파견 결론 

선심쓰듯 신규채용 꼼수는 그만 

사쪽의 불법경영 동조·방기 말고 

비정규직 철폐 연대투쟁 나서야

 

회사 경영을 위해서도 비정규직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회사의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은 벌써 3년째 본연의 업무는 내팽개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혹시 점거농성을 하지 않을까 공장 출입구와 옥상 입구에서 보초 근무를 섭니다. 철야보초근무를 서고도 개인 업무에 대한 능력평가 때문에 퇴근하지 못하고 졸면서 일하는 사람이 늘어갑니다. 비정규직 파업현장에 동원되어 상호폭력에 휘말려 부상자도 속출합니다. 빠지고 싶어도 인사평가에서 하위 5%를 받으면 PIP교육(역량강화교육)이라는 퇴출프로그램으로 내몰립니다. 대학 나와 보초 서려고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느냐며 무너진 자존감에 괴로워하는 관리자들이 회사 업무에 집중 할 리 만무합니다.현장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되어 작업을 하는데 사내하청업체의 독립적 경영과 노무관리로 은폐하기 위해 서로 말도 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가 있습니다. 품질문제 개선의 주체인 관리자들은 보초를 서고 현장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품질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소통이 단절된 상태로 벌써 3년째 차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미국 판매시장에서 현대차의 각종 품질지수는 곤두박질치고 판매는 감소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 때문에 회사가 망하겠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10년이 되어도 해결하지 못하는 경영진에 대한 원망이 시한폭탄 상태입니다.

 

비정규직 문제로 정규직노조도 고립되고 있습니다.

 

저는 현대차지부 정규직 조합원 교육 강사로 자원해서 나섰습니다. 왜곡되고 비뚤어진 대공장 정규직 노동운동, 자본주의에 부역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의 문제를 공격적으로 들추어내 바로잡기 위해 마지막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낡은 관행과 잘못된 상식이 단번에 고쳐지지 않겠지만 지금 상태가 정의롭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조합원들이 늘어나면 지금보다 좋은 방향으로 전환될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세계 최장시간의 노동으로 과로사로 죽어가는 소위 ‘노동귀족’의 현실과 노동자간 신분차별과 격차의 상징, 사회 양극화의 상징인 비정규직 문제 해결 없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운동의 정당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적 고립으로 노동조합도 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규직 절반의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한 노동귀족, 대공장 정규직 책임론, 고임금론, 대공장 이기주의, 배부른 투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정규직의 고용안정 또한 회사는 언제든지 절반의 임금을 주는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상시적 고용불안에 시달립니다. 조합원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 지경까지 온 건 노조간부와 활동가들의 잘못입니다. 조합원들에게 반성하고 고백하고 사과합니다. 조합원들이야 주어진 조건에서 비정규직들을 고용안정 방패막이로 사용하자는 회사의 유혹에 내가 살기 위해 선택한 것이고, 어렵고 힘든 일을 떠넘기니 일하기 편해서 비정규직을 선호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차별을 철폐하고 평등세상을 건설하자는 약속을 망각했고 의식은 마비되었습니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하던 정의감은 사라지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의식은 부패하고 타락하여 노동자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현장이 되었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은 강도요 살인입니다. 현대차 정규직이 살기 위해 비정규직을 먼저 해고시키자는 담합과 공동모의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도 남을 일이기에 우리 모두가 반성에서부터 시작하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대공장 정규직 노동운동의 기회

 

우리는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하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약속했습니다. 그 길만이 노동해방이요 인간해방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대차 현장을 들여다보면 정규직보다 열심히 일하는 비정규직을 잘 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평등세상 건설이라는 노동운동의 목표를 상실하고 실패한 결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대차 공장 담벼락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국민들은 회사가 아니라 정규직 노동운동을 비난과 지탄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 경제신문들은 이 빈틈을 파고들어 상대적 고임금을 받는 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증오심과 적개심에 불을 붙였습니다. 적으로 적을 제압한다는 ‘이이제이’라는 악마의 덫에 걸린 것입니다. 사회적 고립으로 설 땅이 없어진 대공장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가장 앞장서야 할 이유입니다. 더구나 대법원에서 두 차례나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을 했습니다. 지난 3월19일에는 중앙노동위원회가 대법원보다 일부 축소되었지만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불법파견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대차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동안 크게 선심을 쓰듯 신규채용으로 불법파견을 은폐하려던 술책도 유용효과를 상실했습니다. 당사자들의 직접교섭을 회피할 꺼리도 없으며, 법적 교섭권자인 금속노조가 비정규직지회를 교섭위원으로 통보하고 교섭을 하자면 나와야 합니다. 여기에 정규직지부가 원하청공동투쟁을 복원하고 특별교섭에 힘을 싣는다면 금상첨화가 됩니다. 현대차 정규직지부가 투쟁의 대의명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대공장 정규직 노동운동이 이 사회의 진실을 추구하고 ‘정의의 칼’이라는 고유기능을 회복할 좋은 기회는 지금 내부보다 외부에서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다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단결해야 합니다.

 

대법원의 판결과 중노위의 불법파견 판정은 현대차 노사간에 합의했던 비정규직 관련 모든 합의가 불법임을 판정한 것이기에 불법 합의는 원인무효가 됩니다. 현대차 정규직지부는 불법합의 원인무효를 선언하고 불법경영에 더 이상 동조하거나 협조하지 않을 것을 천명하며 원하청 공동투쟁을 복원하여 비정규직 철폐 투쟁에 나서야 합니다. 현대차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마지막 상황까지 몰렸습니다. 회사에게만 불법파견 철폐와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정규직지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방기해서는 안 됩니다. 당사자들과 합의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지부 가입을 가로막고 있는 지부운영규정을 개정하여 조합원으로 먼저 끌어안아야 합니다. 그래서 불법파견 정규직화에서 제외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체협약을 적용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합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5조 일반적 구속력과 제36조 지역적 구속력에 근거하여 현대차지부에 가입한 비정규직 노동자라 할지라도 단체협약의 효력을 확장하여 차별을 철폐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적극 앞장서야 합니다. 이것이 그동안 노사담합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서도 해결하는데 적극 나서지 못한 과거의 잘못을 용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저부터 함께 할 것입니다. 저부터 시작해 조합원과 집행부, 대의원과 활동가들과 함께 원하청연대투쟁 복원에 앞장서고 불법파견을 철폐하여 정규직화 투쟁을 반드시 승리로 이끄는 데 힘을 보탤 것입니다. 얼마 안 있으면 최병승, 천의봉 조합원의 철탑 고공농성이 반년이 됩니다. 인간적으로 미안하고 죄스럽습니다. 빨리 해결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 웃으면서 소주 한 잔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실천하겠습니다.

 

하부영(금속노조 현대차지부 교육위원, 전 현대차노조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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